[스가쥬리카게]Waiting you
삐루/요엔이 언니(@Bbiru_dr) 선물
1.
아,
왜 이런 날만 하늘은 또 새파란지.
소금기 가득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노랗게 핀 팬지는 오늘따라 상큼함을 가득 머금고 예쁘기만 했다. 야속하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나름 중학교 내내 함께하면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에 오면 가망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또 후두둑 떨어졌다. 몸을 쪼그렸다. 훨씬 가까워진 팬지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만 있었다.
"나 정말 왜 이러니..."
놓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만 하다. 이렇게 울어봤자 그 녀석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흐어엉..."
"어,"
인기척? 고개를 돌렸다. 누구야, 남의 우는 모습 훔쳐보는 녀석! 눈을 부릅떴다. 안 그래도 기분 별론데..! 화단으로 들어오는 모퉁이에서 누군가 어정쩡한 폼으로 서 있었다. 머리카락 색소는 옅었고, 키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눈 옆에 점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뭘 봐!"
"앗,"
눈물도 쏙 들어갈 만큼 크게 외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그 사람 옆을 홱 하고 지나갔다. 남이 울고 있으면 말이야, 달래주지는 못하더라도 모른 척 지나가는 게 예의잖아! 독기에 찬 얼굴로 눈을 세게 문질러 닦았다. 오늘은 정말 기분이 별로다.
어, 그런데 그 사람 몇 학년이었지.
2.
왜 나쁜 직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는 했다. 카게야마를 보는 것도 조금씩 지쳐서, 이번엔 정말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 미뤄 왔던 부활동은 결국 이전과 똑같은 배구부 매니저로 결정되었다. 3년간 배구부 매니저를 한 이유가 카게야마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배구를 좋아했고, 선수들을 서포트해 주는 것이 즐거웠다. 치하야 언니를 몇 시간씩이나 전화로 붙잡아 두면서 내린 결론이지만...
그렇게 그 길로 배구부 매니저인 선배한테 달려가 입부 의사를 밝히고, 신청서를 쓰고, 문학 선생님께 제출했다. 매니저 선배 무지 예뻤다! 그 때까지는, 이번엔 카게야마 같은 건 정말 신경쓰지 않고 부활동에 전념해 보이겠어! 라는 당찬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아, 네가 새 매니저구나?"
"어?"
"잘 부탁해. 난 스가와라 코우시!"
"아, 스가가 부부장이야."
보았던 얼굴과, 익숙한 눈 밑의 점.
그렇다는 건..?
"며, 몇 학년..."
"응? 3학년이지?"
몸이 쨍 하고 굳어 버렸다. 선배셨어!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미움 살 거야! 그 흔한 명찰도 보지 않은 내가 바보 같았다. 남학생은 넥타이도 없어서, 설마 선배라고는...!
"죄, 죄송합니다!"
"어, 어?"
"선배이신 줄 몰랐어요! 그, 그냥 놀라서!"
"아, 괜찮아! 내가 미안했지!"
"아니에요! 제가 괜히 화내서..!"
"무슨 일 있었어, 스가?"
"그, 그게..!"
"아니, 그냥 별 일 아니었어! 이제 괜찮니?"
따스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걱정해주신 건가?
"아, 네에... 괜찮아요..."
그리고 햇살 같은 미소가, 눈 앞을 비췄다.
"다행이다."
아, 생각보다 엄청 착한 사람인 것 같아.
마음이 보들보들해졌어.
3.
"뭘 봐!"
깜짝 놀랐다. 화단 앞을 청소하러 왔는데 일 학년 여자애가 울고 있어서, 원래대로였다면 놀라면사도 평범하게 지나쳤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카게야마의 친구라는 말을 얼핏 들었던 탓도 있었지만, 너무 서럽게 울어서... 달래줘야 하나, 라는 조금 오지랖 넓은 생각까지 하고 있다가 봉변을 당했다.
물론 내 잘못이다. 남이 우는 모습을 그렇게 빤히 보고 있는 건, 분명 기분 나빴을 것이다. 그렇게 내 잘못이다- 라고 생각하고 잊었었는데, 놀랍게도 그 아이는 몇 주 후 배구부 매니저로 들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어, 어?"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 아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예의바른 아이구나. 예상과는 조금 다른 반응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이름은 쥬몬지 리코라고 했다. 귀여운 이름이구나. 입 안으로 몇 번이나 발음해 보았다. 응. 귀여워.
마주치는 일이 묘하게 잦았다. 아닌가. 사실은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아이는 처음엔 달갑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지만, 천천히,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밝은 표정을 지어 주었다. 그게 토끼 같고 너무 귀여워서. 싱그러운 웃음이 입가에 퍼진다.
어쩌지. 사랑에 빠질 것 같아.
"선배는 친절하네요."
눈이 휘어지는 모양이 참 예쁘다. 그런 네 앞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쑥쓰러워져 버려.
"어, 내가? 그런가..?"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 때 그 화단에서 울고 있었던 이유도, 언제부턴가 대강 짐작하게 되었다.
카게야마 앞에서는 자주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니까.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어. 천천히, 조금의 시간을 거쳐서라도 너는 나를 봐 줄 거라고. 꽃이라도 몇 송이 꺾어서 반겨줄 수 있었다. 너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했고, 나는 너에게라면 그 누구보다 다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믿었다.
4.
꽃아,
이리 오렴.
5.
아 말도 안 돼.
입을 틀어막았다. 창틀을 청소하는 도중, 반대편 골목에서 나누던 대화를 확실히 들어 버렸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합동 수업을 같이 듣는 옆 반의 아이라는 건 알았다. 고백을 엿듣는 건 나쁜 일이지만, 들려버렸는 걸 어떡해. 기분이 축축 처졌다.
분명 이제 신경쓰지 않기로 했는데. 카게야마가 딱 잘라 거절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그 자식, 고백을 받아놓고 웅얼웅얼 꾸물꾸물.
"진짜 짜증나..." 내가 왜 이런 걸로 우울해하지.
터덜터덜. 발소리에 힘이 없었다. 아, 가면 또 그 녀석 얼굴 봐야 할 텐데. 가기 싫다. 빠질까. 아냐.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돌았다. 노오란 햇살이 창문 너머로 비쳐들어왔다.
그 선배였다. 색소가 옅고 눈물점이 예쁜. 선배가 가방을 한쪽에 메고, 복도 창문에 걸터 서 있다가, 내 쪽을 봤다. 아, 정말 보면 볼수록 예쁜 사람이다. 다정함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저런 느낌일까.
"쥬리?"
하얀 목을 돌려, 순한 눈으로 나를 본다. 아. 눈물이 터져나왔다. 왜지. 울 만할 일이 아닌데. 아무 일도 없었는데. 진짜 괜찮은데. 왜 이 선배 앞에서는 울게 되는지...
"스가와라, 선, 배"
"자, 잠깐. 무슨 일이야. 누가 괴롭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진짜 아무 일 아닌데. 선배는 안절부절못하고 날 달랬다. 뚝. 그치자. 무슨 일이야. 말이라도 해 봐.
"응? 쥬리 쨩. 괜찮아?"
"흑, 흐으읍..."
어느 샌가 안긴 선배의 품이 따스했다. 눈물의 짠기가 얼굴에 닿았다. 어쩌지. 계속 이렇게 있고 싶어. 사람은 달래 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울음이 터지고 마는 법이라서,
"뚝...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울지 마."
"미안,해요. 미안해요 선배. 맨, 맨날 울기만 하고..."
"아니야. 괜찮아... 그 날에도 달래주고 싶었어. 내가 더 미안해... 그러니까 그만 울자."
선배의 손이 내 등을 찬찬히 토닥였다. 너무 따뜻한 말을 들어서, 조금 무서워...
"저는, 저는 정말 힘냈다고 생각했는데..."
"응. 맞아. 힘냈어. 이제 괜찮아."
코끝 가득히 향기가 스몄다.
6.
언제나처럼 당연히 본 그 자리에 그 녀석은 없었다. 쥬몬지 리코. 절대 눈에 띄지 않는 타입은 아닌데도, 오늘은 왜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어딜 간 거지. 이런 경우는 거의 처음이라, 당황해서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실패였다. 사실, 그녀석이 갈 곳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왜지. 꽤 오랜 사이일 텐데...
이렇게까지 했는데 없는 걸 보니 먼저 부활동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마침 부활동 시작하기 조금 전이다. 늦으면 안 될 텐데. 헐레벌떡 뛰어 복도를 달렸다.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왜 울고 있지?
".....야.... 이라도..."
한 명은 아니었다. 스가 선배도 있었다. 조근조근 그 녀석을 달래는 목소리로. 천천히 복도를 돌았다. 그 녀석은 나에게서 등을 돌린 채 스가 선배의 품에 안겨 있었다. 선배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선배는 조금 화난 듯,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긴장감이 복도를 꽉 채웠다.
"-아, 힘냈어... 이제 괜찮아."
눈과 눈이 사늘하고 당황스레 마주친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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